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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나체 고행자, 파티카, 4부 중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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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나체 고행자가‍ 지시한 대로‍ 부처에게 가서‍ 초대의 말을 전했어요. 나체 고행자의‍ 지시 대로‍ 모든 일을 끝내고‍ 그에게 돌아왔어요. 나체 고행자에게‍ 돌아왔죠. 이 남자는‍ 정말 벌거벗었네요. 영적 이해와 깨달음을‍ 벗어 던졌어요. 그래서 그런 행동과‍ 그런 말을 하고‍ 어린 소년을 그런 식으로‍ 속일 수 있는 거죠. 내 생각에는요, 책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몇 마디‍ 안 할 수가 없네요. 입이 가만 있질 않네요. 비판하면 안 되겠죠?‍ 심판하지 말라‍, 그러면 심판 받지 않으리라.‍ 오, 오늘 내가 비판한 것‍ 때문에 언젠가 내가 나체‍ 수행자가 될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게 되면‍ 제발 눈을 가리세요. 내가 창피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볼 게‍ 없을 테니까요. 이 나이가 되면 볼만한 게 없죠.

그 나체 수행자는‍ 소년이 돌아오자 이렇게‍ 물었어요. 『어떻게‍ 했느냐?』 소년이 말했죠. 『일러준 대로 했습니다. 고귀하신 분이시여』‍ 참 고귀하기도 하군요!‍ 『정말 잘 했다, 얘야.‍ 이제 우리 둘이서‍ 그를 위해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먹자꾸나』‍ 그 말은 어차피 부처가‍ 집을 못 찾을 테니‍ 부처가 먹지 못할 음식을‍ 둘이서 전부‍ 즐기자는 것이죠.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체 고행자는‍ 그 어머니의 집에 가서‍ 소년을 데리고‍ 뒷방으로 가서‍ 함께 앉았어요. 이웃은 그 집을‍ 쇠똥으로 바르고, 라자 꽃을 포함한‍ 5가지 꽃으로 장식하고‍ 선생님, 그러니까‍ 부처께서 앉을 고급스런‍ 자리를 준비했어요.

인도에서는 쇠똥이‍ 아주 유용하죠. 신선할 때‍ 집에 바르죠. 페인트칠 하는 것처럼요. 새로 단장한단 의미죠. 그 당시에는 아직‍ 페인트가 없었을 거예요. 쇠똥은 집에 들어오는‍ 곤충을 줄여주고‍ 제거해 줘요. 아무튼 그래요. 그들은 집 안팎으로‍ 온 사방에 그걸 바르는데‍ 그럼 벌레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요. 요즘에는 모든 집들이‍ 쇠똥을 바르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그런 집이 많아요. 나도 본 적이 있어요. 아니면 히말라야에서처럼‍ 진흙을 써요. 돌이나 벽돌로‍ 지은 집은 찾아보기‍ 힘들죠. 수행자를 위한 작은 집은‍ 진짜 진흙으로 돼 있고‍ 칠도 안 되어 있어요.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어서 전갈들이‍ 무료로 방문하죠.

나도 여러 번‍ 그런 집에서 살았어요. 전갈, 지네, 뱀이‍ 가끔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나가죠. 때로는 게으른 전갈이‍ 나가지 않고 있기도 해요. 그럼 내가 병에 넣어서‍ 바깥 숲 속 어딘가‍ 큰 돌까지 배웅해야 하죠. 다행히 나를 좋아했어요. 그게 아니라 너무‍ 가까이는 안 왔다고요. 날 좋아해도‍ 별다른 행동은 안 했어요.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철의 여인이었던 것‍ 같아요. 캄캄한 숲을‍ 겁도 없이 걸어 다녔는데‍ 이젠 무서워요. 어두운 밤에 걸어서‍ 집에 갔었죠. 불빛도 없고 전기도 없고‍ 손전등도 없이요. 살 형편이 안 됐거든요. 전갈과 지네가 사방에‍ 널린 데서 살았고요.

눈이 멀었던 게 분명해요. 사랑은 눈을 멀게 하죠. 신에 대한 사랑이요. 신에 대한 사랑에‍ 내가 눈이 멀었던 거죠. 이젠 백만 달러를 줄 테니‍ 인도에 오라 해도‍ 정중히 거절할 거예요. 난 이제 금욕주의자예요. 돈이 필요 없어요.

됐죠. 자, 그래서 이웃들이‍ 집에 쇠똥 바르는 걸‍ 도와줬어요. 그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의 표시였죠. 시골에선‍ 아직도 그렇게 해요. 나도 전에 그런 집에‍ 앉아 있어 봤어요. 그런 집을 세냈던 건‍ 아니고 가능한 집이나‍ 방을 아무거나 빌렸는데‍ 대개는 쇠똥이 아니라‍ 진흙으로 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런 집들을 많이‍ 봤고 앉아 있어도 봤어요. 아무 냄새도 안 나요. 전혀 안 나요. 재미있죠. 마른 후에는…‍ 아마 축축할 때는‍ 냄새가 날 수 있겠지만‍ 마른 후에는‍ 냄새가 전혀 안 나요. 인도에서는 쇠똥을‍ 차파티처럼 둥글고‍ 납작하게 만들어서‍ 벽에다 바르고‍ 말려요. 아니면 집 안에‍ 따뜻하게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다시 물과 섞어 액상으로‍ 만들어서 집에 발라요. 여러분은 이게 웃기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집에 왜 똥을‍ 바르냐고요. 하지만 그런 식이에요.

옛날에는 때로‍ 큰 단상을 준비해 놓고‍ 쇠똥을 그 위에 바르고‍ 스승을 초대해 거기 앉아‍ 강연하게 했어요. 괄호 안에 이런 말이‍ 삽입되어 있네요. 『부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의 자리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또‍ 부처는 길을 알려줄‍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모른다. 그들이 보리수 아래 앉아‍ 깨달음을 얻은 그 날, 만 개의 세계가 진동하고‍ 그들에게 모든 길들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이 길은 지옥으로 이끌고, 이 길은 축생계로 이끌고, 이 길은 아귀계로 이끌고, 이 길은 인간계로 이끌고, 이 길은 천상계로 이끌고, 이 길은 영생, 대열반으로 이끈다』‍ 그 뜻은 모든 부처가‍ 깨달았을 때‍ 대개 나무 밑 같은 데‍ 앉아 있었다는 거예요. 높은 자리나‍ 장식된 단상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그때 그들은‍ 모든 것을 압니다. 해탈의 가장 좋은 길이‍ 어떤 길인지 알죠. 그거예요 그런 뜻이에요.

『그들에게 마을이나‍ 시장이나 혹은‍ 어떤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봐요, 부처는 아마 그곳이‍ 어딘지 알 거예요. 물어볼 수 있죠, 그렇죠?‍ 어쨌거나‍ 그래서 그 선생님, 그러니까 부처는‍ 아침 일찍 발우를 들고‍ 승복을 입고 곧장‍ 그 훌륭한 여 재가자의‍ 집으로 갔어요. 그녀는 집에서 나와‍ 부처에게 정중하게‍ 절을 한 뒤‍ 집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시주하는 물을‍ 부처의 오른손에 붓고‍ 음식을 고르게 했죠. 물은 그냥 손을 씻으라고‍ 부어주는 거예요. 때로는 발을 씻도록‍ 물을 가져오기도 해요. 부처는 늘 맨발로‍ 걸어 다니니까요.

요즘도 일부 사원에는‍ 그런 전통이 남아있죠. 가령 태국에서는‍ 사원 바깥에 쟁반, 얕은 대야가‍ 항상 놓여 있어요. 문 앞에 두죠 아니면‍ 안에다 그걸 설치해 놓고‍ 물을 항시 채워 놓아요. 승려들이 밖에서‍ 탁발을 하고 오거나‍ 심부름이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거기서 발을 씻죠. 홀이나 자기 거처 또는‍ 명상 홀이나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요.

됐어요. 자… 『그런 뒤‍ 딱딱하고 부드러운 음식‍ 가운데 고르게 했다』‍ 여기와 같죠. 여긴 국과‍ 고형 단백질과‍ 밥과 샐러드가 있죠. 『선생님이 식사를‍ 끝마치자‍ 그 여 재가자는‍ 그가 설법하기를‍ 바라며 그의 발우를‍ 치웠다. 그러자 선생님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법희‍ 충만한 설법을 시작했다』‍ 그가 식사를 마쳤을 때‍ 그릇을 치워버린 게‍ 아니라 아마도 자리를‍ 정돈해서 그가 말을 할‍ 자리를 마련한 것일 테죠. 아니면 부처가 식사를‍ 마쳐서 이제 설법을‍ 시작할 거란 신호였겠죠. 그 스승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법희충만한‍ 설법을 시작했어요. 그 재가자는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서‍ 스승을 칭송하며 말했죠. 『지당하십니다!』‍ 나체 고행자는‍ 뒷방에 앉아서‍ 스승이 설법하는 동안‍ 재가자가 하는 말과‍ 찬사를 다 들었어요. 그는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말했죠. 『그녀는‍ 이제 내 제자가 아니다』‍ 그만뒀죠. 다행이에요!‍

그는 그녀를 제자로서‍ 책망하며 밖으로 나왔죠. 그러곤 그녀에게 말했죠. 『이 남자를 찬탄하다니‍ 실성했구나』‍ 그리고 그 여 재가자와‍ 스승에게 온갖 악담을‍ 퍼붓고서 달아났어요. 어디로 갔나 모르겠네요. 이제 누가 그에게‍ 공양을 바칠까요?‍ 재가자는‍ 나체 고행자의 욕설에‍ 너무 당혹스럽고‍ 마음이 심란해서‍ 그 스승의 강연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그 스승이 물었죠. 『재가자여, 강연에 마음을‍ 집중할 수 없는가?』‍ 아마 입문하는 중이어서‍ 주의 깊게 들어야 했겠죠. 그녀가 대답했어요. 『선하고 존귀하신 분이여, 그 나체 고행자의‍ 험담에 제 마음이‍ 매우 산란합니다』‍

이에 그 스승이 말했어요. 『그처럼 심술궂은 자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말고, 그 같은 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말라.‍ 오직 자신이 행한 일과‍ 빠뜨린 일에만‍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의 게송을 읊었어요.

『타인의 과오나 행동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행한 일과 행하지 않은‍ 일만을 살펴야 하느니라』

즉 자기 일만 신경 쓰라는‍ 거죠 타인이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이 아니고요. 그저 자기 일만 신경 쓰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이게 끝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그건 소유욕이지‍ 금욕이 아니에요. 봤지요? (네)‍ 웃기죠. 이혼과 같아요. 그 고행자는 대리 아내와‍ 이혼한 후 자기 엄마한테‍ 다시 달려갔을 거예요.

금욕주의에 대한 질문‍ 있어요? 없어요?‍ 금욕주의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어요. 내면의 금욕이 최고지만‍ 물론 세속의 에너지, 사람들과 많이 섞이는 걸‍ 피할 수 있다면‍ 그것도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재가자로서‍ 늘 그렇게 할 순 없으니‍ 이따금씩 안거를 하세요. 여기나 자기 집이나‍ 자신에게 좋고‍ 조용한 장소에서요. 세상의 영향을 좀‍ 씻어내는 거죠. 그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고대의‍ 진정한 고행은, 부처도 때로 전생에서‍ 고행을 좀 했어요. 이를테면 혼자 또는‍ 뜻이 맞는 한두 명과‍ 같이 숲 속에 들어가서‍ 뿌리나 잎사귀 등‍ 숲에서 나는 것들을‍ 먹고 지냈어요. 정말 좋은 얘기들이 있죠. 좋은 이야기 책이 있는데‍ 여기 안 가져왔어요. 아주 멀리 있죠. 가서‍ 가져오기엔 너무 멀죠. 그걸 갖고 있는 사람에게‍ 가져오라 할 수 있었지만‍ 여기 이야기가 많으니‍ 그럴 필요까진 없죠.

그래서 옛날에는‍ 속세를 떠난다고 하면‍ 정말 그렇게 했어요. 그들은 혼자 숲에 가서‍ 쌀 포대로 만든 옷 같이‍ 거칠고 까끌거리는‍ 그런 조잡한 옷을‍ 입고 지냈어요. 뭐든 구할 수 있는 것, 무명천이나 사람들이‍ 거리나 쓰레기통에‍ 버린 것들이었죠. 그걸 빨아서‍ 서로 이어 붙인 다음‍ 몸에 걸치면‍ 몸을 따뜻하게 하죠. 또는 담요 같은 거‍ 하나로 숲 속의‍ 움막에서 살았죠. 아마 직접 지었겠죠.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와‍ 잎사귀 등을‍ 이용해서요. 그렇게 자신들의‍ 평온을 찾았어요.

그들은 덜 가지지만 더 많이 얻습니다. 외부의 것은 적지만‍ 내면의 것을 더 얻죠. 그런 이야기는 정말‍ 깊은 감흥을 주지만‍ 누구나 그러진 못해요. 운명에도 달렸죠. 내 경우는‍ 때로 그러기 힘들어요. 집에서 여러분을‍ 생각하니까요. 여러분은 날 보길 원하고‍ 함께 앉아서 이런저런 걸‍ 일깨워 주길 바라죠. 그저 날 보고 싶어하죠. 때로는 의무처럼‍ 느껴져요. 물론 여러분을 사랑해요. 싫은데 마지 못해서‍ 한다는 건 아녜요. 그런 건 아니에요.

나도 여러분을 보면서‍ 봉사할 수 있고‍ 좋은 수행 방법을‍ 일깨워줄 수 있어 기뻐요. 나도 무척 기뻐요. 하지만 여러분이 그걸‍ 실천한다면 더 기쁘겠죠. 고대의 지혜에 관해‍ 읽고 들었으니‍ 실천해야죠. 그러면‍ 내가 정말 기쁠 거예요. 나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서‍ 처음의 이상을 잊고, 삶의 고귀한 포부를 잊고, 목표를 잊고 그저 생존을‍ 위해 매일 너무 바쁘게‍ 사는 것보단 더 기쁘겠죠. 여러분이 가끔 날 보고 난‍ 뒤에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길 바랄 뿐이죠. 예전에 실패했다면‍ 다시 시작하세요. 날 보면 가끔 도움이‍ 되나요? (네)‍ 그럼 좋아요. 내가 의도하는 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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